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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 ★★★☆
* 한줄평 :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 적요할 것 : 머릿돌을 찾아보자.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가져보자.

도시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문화가 있고, 그것은 각종 물리적인 흔적들로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한번에 사라지지 않고,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그것을 시층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들이 모인 것을 <삼문화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변 지역과, 내가 알고 있는 곳에 대한 흔적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잘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그런 경우에 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의 사물과 시층에 대해서 관심있게 관찰하고 지켜봐야 한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 없이 하나하나 관심을 갖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주변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머릿말'을 보는 것이 도시를 이해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머릿말은 해당 건물을 지은 사람의 목적과 태도,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를 그저 나의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사물이라고 정의하면, 읽을 것도 느낄 것도, 그리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기회도 없다. 하지만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에는 읽고 해석하고 느낄 사물들이 천지에 널려있다.

 

내 주변 지역과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세계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으로 읽고 해석하려고 시도해봐야겠다.


* 전후 수도가 될 뻔한 부평 (37)

특히 부평의 경우에는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항구인 인천 원도심 지역과 정치적 중심인 경성 지역을 잇는 요충지이자 군부대, 군수 시설의 밀집 지대로서, 6.25 전쟁 때에는 황폐해진 서울 대신 새로운 수도를 만들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 대서울의 전통 (57)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창조된 조선 시대풍 현대 건축물들과, 원래 위치와는 다른 곳에 놓여 있는 조선 시대 건물 표지석들이 대서울의 전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형성된 신앙을 담고 있는 20세기 전기의 개량 한옥과 일식 가옥, 이것이 바로 초라하지만 끈질긴 대서울의 평민과 시민의 전통입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만이 대서울의 종교가 아닙니다. 대서울 곳곳에서 널리 확인되는 부군당, 도당 신앙, 제갈량과 관우 신앙, 녹번 고개 산골 판매소의 토지신 신앙, 그리고 대서울은 아니지만 경상남도 창원시의 가포 마을 신사도 현대 한국 시민의 당당한 신앙 형태입니다. 

 

* 머릿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73)

저는 20세기 후기에 대서울 곳곳에 세워진 상가 건물의 머릿돌에 특히 관심이 있습니다. 얼핏 특징 없고 무뚝뚝하게 보이는 상가 건물 정문에 정중하게 배치된 머릿돌은, 그 상가 건물에 대해, 나아가 그 상가 건물이 세워진 20세기 후기 한국에 대해 새로이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 현장에 답이 있다 (137)

저보다 앞서서 서울을 걷고 기록한 사람은 당연히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던지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큰 울림을 주는 것들이 현장에는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현장에 가서 그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그곳에 대해 납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연구 분야인 문헌학에서 요구되는 기본 자세이기도 합니다. 실물을 봐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 신흥 상인 세력과 부군당 신앙 (163)

즉 부군당은 기존의 양반 계층이 아닌 신흥 자본가 계급이 모신 신앙 대상으로서, 마치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기존 귀족 계급의 신앙인 가톨릭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립한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초기에 부군당을 섬긴 아전, 하인, 노비, 그리고 조선 후기에 부군당을 섬긴 신흥 중간 계급이 오늘날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축이 되는 시민의 원형에 해당하며, 거칠게 말하면 부군당 신앙은 민주공화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 다양성이 공존하는 서울 (239)

지나치게 <청결>하고 <균질>한 환경이 사람에게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처럼, 군사 시설과 화장터와 무덤과 서민의 공간을 모두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결국은 서울이라는 공간과 서울 시민에게 나쁜 결과를 낳으리라고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서로 다른 사람과 건물이 뒤섞여 있어야 활기를 띠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삼문화 광장 (249)

삼문화 광장이란 개념은 아스테카 시대, 스페인 식민지 시대, 멕시코 시대의 세 건물이 한눈에 보이는 멕시코시티의 <삼문화 광장Plaza de las Tres Culturas>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유물, 유적만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근대와 현대의 유물, 유적도 서울의 역사적 특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존재라는 뜻에서 이 개념을 대서울 답사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 서울이 위대한 이유 (280-281)

서울은 망해 버린 조선 왕조의 궁궐이 다섯 개나 있어서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국가를 만들고자 백 년 전에 선언한 그대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 과정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 서울 백 년 역사의 시층을 퇴행적인 조선 시대 신봉자들로부터, 그리고 서울이 주상복합 건물로 뒤덮이는 미래를 꿈꾸면서도 외국에 나가서는 그곳의 잘 보존된 역사와 문화를 부러워하는 사대주의자들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 이 시대의 역사 왜곡 (372)

캠프 레드클라우드 앞에 흥선로, 캠프 라과디아 자리에 흥선역, 의정부역 동쪽의 캠프 홀링워터 북쪽에 흥선 지하도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서, 저는 흥선 대원군으로 미군 기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정부시의 의도를 읽습니다. 흥선 지하도의 준공 연도가 1978년이니, 의정부시가 흥선 대원군을 현창함으로써 군사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역사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고 한 시도가 늦어도 이즈음에는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미군 위안부와 선택적 정의 (379)

한국 사회는 일본을 비난할 계제가 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분노하지만, 한국 정부, 한국인, 한국 사회가 묻어 버렸던 사건을 다시 파헤쳐서 우리 스스로를 자아비판해야 하는 한국군,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 침묵, 집단 망각에 맞서서 김정자 선생 등은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고, 현재 2심까지 이들이 승소한 상태입니다.

 

* 남양주시와 다산 정약용 (395)

저는 남양주시와 다산 정약용의 관계를, 석촌 호수에 서 있는 청태종 공덕비(일명 삼전도비)라는 이른바 <국치>의 상징 옆에 백제가 일본에 보낸 칠지도에 대한 팸플릿을 둔 사례와 함께, 행정 구역이 확립되고 나서 그 행정 구역의 이미지가 원래의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지는가를 잘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행정구역 안에 무언가 유명한 시설이나 인물이 있었다면, 다소 맥락에 맞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자기 행정 구역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는 것이지요.

 

* 대서울의 시층과 공존하는 법 (427)

단독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그 후 헐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상가로 쓰이는 경우를 보면서는, 영동 개발 초기라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지어진 단독 주택이라고 해서 그냥 헐어 버리고 고층 빌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멀지 않은 과거이지만 강남의 초기 역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제자리 이주민 (448)

서울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이주한, 또는 서울시에서 주변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끼리 갈등할 때, 농촌 경기도 시절의 주민들은 조용히 그 모습을 감추거나 가만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서울의 외곽 지역인 경기도 신도시 지역을 바라볼 때에는 농촌 경기도 시절의 주민, 서울시로부터의 이주민 1세대, 신도시에서 태어난 이주민 2세대라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 서울 발전의 그늘 (459)

현대 서울의 역사는, 서울이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서울 시민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경기도로 밀어낸 역사입니다. 청계천 변 등 서울 곳곳의 빈민촌에 살던 10만명을 지금의 성남 원도심인 광주 대단지에 보낸 것이 그리하고, 서울시에서 사용할 화장장을 고양시 덕양구에 세운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과 경기도는 대서울을 형성했습니다. 서울 시민들은 이러한 역사를 잊지 않고 부채의식과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갈등 도시(서울 선언 2)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김시덕 교수가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까지 답사 범위를 넓혀 재개발이 예정된 불량 가옥과 성매매 집결지, 이름 없는 마을 비석과 어디에 놓여 있는지 찾기도 힘든 머릿돌들까지 살펴보며 시민들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또 죽어 간 이야기들을 수집해 들려주는 『갈등 도시』. 저자는 자신의 현 거주지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대서울을 차근차근 기록해 나간다. 총 20개의 답사 코스는 크게 세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서울시를 중심으로 북쪽의 파주부터 남쪽의 시흥까지 서부를 훑는 ‘경인 메갈로폴리스의 축’이 하나, 종로구와 중구와 용산구를 깊게 들여다보는 ‘대서울의 한가운데’ 답사가 두 번째, 북쪽의 의정부부터 남쪽의 용인까지 서울 동쪽을 아우르는 것이 세 번째이다. 조선 왕조를 찬양하는 건축이나, 일제 강점기의 아픈 유산을 돌아보는 답사도 좋지만, 그것이 서울의 전부일 리는 없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구조물만이 서울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재개발 동네의 벽보, 이재민과 실향민의 마을 비석, 부군당과 미군 위안부 수용 시설에도 시민의 역사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이야기하며 이런 답사기야말로 표백된 서울이 아니라 진짜 서울의 역사를 만나는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저자
김시덕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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