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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4life, 출처 Pixabay

 

 

오늘의 말씀 본문

1.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3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4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포도원을 맡기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의한 열매를 맺게 방치하고, 오히려 악용하였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릇되게 사람들을 대우한 적이 없으시다. 언제나 사랑으로, 그리고 성실함과 신실함으로 대해주셨다. 반면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악하고 거짓되게 대했다.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6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주기도 못하게 하여,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하겠다. 내가 또한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7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맡기시면서 '선한 일'과 '옳은 일'하기를 기대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하시고 옳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그분의 대리자로서,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선한 일과 옳은 일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들포도'밖에 만들지 못하는, 타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8 너희가, 더 차지할 곳이 없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9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다 말씀하셨다. "많은 집들이 반드시 황폐해지고, 아무리 크고 좋은 집들이라도 텅 빈 흉가가 되어서, 사람 하나 거기에 살지 않을 것이다.

10 또한 열흘 갈이 포도원이 포도주 한 바트밖에 내지 못하며, 한 호멜의 씨가 겨우 한 에바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11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한 술을 찾는 사람과, 밤이 늦도록 포도주에 얼이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재앙이 닥친다!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거문고와 소구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보다 자기 일을 우선하는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보응을 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많은 집'과 '크고 좋은 집'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9절). 아울러 많은 포도주를 얻기 위해 포도원을 열심히 경작했던 것 같다(10절). 그 이유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밤늦게까지 포도주에 취해있는 방탕한 삶을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11절).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재앙을 선포하신다(8절).

 

이 본문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바가 큰 것 같다. 자본주의 경제논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단순한 '부의 증식'수준을 넘어 탐욕적인 '부의 폭증'을 추구하고 있다. 그 정도가 지나치게되면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이 우선시되는 상황에까지 치닫게 된다.

 

그것이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 왜 그런가? 정체성과 사명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세상을 하나님의 목적대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 인간이 정체성과 사명을 잊고 자기 사업과 이익에만 몰두한다면, 그야말로 직무유기와 방종이 아닐까?

 

신약성경에도 예수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하인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정의하셨다. 그 말은 단순히 부를 증식시키지 못한 무능함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모든 부의 중심과 원천이 되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에게는 부가 부족하지 않으시다. 그렇기때문에 부의 양이나 증가속도, 수익률에 대해 비판할 이유가 없으시다. 주님이 그 종을 책망한 이유는 그가 주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기 본문을 잊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종의 이유임에도 그는 그 의무를 잊었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큰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13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요, 귀족은 굶주리고 평민은 갈증으로 목이 탈 것이다."

14 그러므로 스올이 입맛을 크게 다시면서, 그 입을 한없이 벌리니, 그들의 영화와 법석거림과 떠드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가, 다 그 곳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15 그래서 천한 사람도 굴욕을 당하고 귀한 사람도 비천해지며, 눈을 치켜 뜨고 한껏 거만을 부리던 자들도 기가 꺾일 것이다.

16 그러나 만군의 주님께서는 공평하셔서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거룩하신 분으로 기림을 받으실 것이다.

17 그 때에 어린 양들이 그 폐허에서 마치 초장에서처럼 풀을 뜯을 것이며, 낯선 사람들이, 망한 부자들의 밭에서 그 산물을 먹을 것이다.

 

말씀묵상

1) 하나님의 선교이야기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인간의 인간성 회복'이다. 인간의 인간성 회복이란, 인간이 태초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원형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대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만드셨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세상을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자신의 뜻이 먼저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익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상을 이용하고, 악용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다시 회복시킬 원하시는 것이다. 포도원을 사랑하는 자에게 맡기고 좋은 열매가 맺히길 기대했지만, 들포도 밖에 나오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신 것이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과연 나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내 이익이 먼저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익과 목적이 먼저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출근해서 일하는 것도 결국은 한 달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닌가? 그렇게 얻은 수익을 투자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미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닌가?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목적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된 이유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된 목적은 '청지기로서의 바른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 출근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장을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왜 가정에서 생활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정을 허락하심으로써 이 땅 가운데 이룰 뜻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살게하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관점에서 나는 하나님의 선교사이다. 직장, 가정, 나아가서는 삶 전체에 하나님의 목적을 구현하고 실현하기 위해 나는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 이 땅에 성취되는 것'도 그 목적일 것이다.

 

목적없는 배는 바다를 표류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성능과 많은 연료를 가진 배라도 잘못된 목적지로 전속력으로 질주한다면 결국 돌아와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그리 애쓰고 수고하는가? 하나님의 선교 목적이 아니라면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할 수도 있다..

 

2) 예수님 이야기

예수님은 자기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들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선교목적이 모든 사람을 태초의 형상대로 회복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셨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을 주심으로써 섬김과 희생의 표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상류지향의 사회와 성공지향의 문화속에서 예수님은 낮아짐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의 길이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임을 증명하셨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

 

내 삶 속에서 예수님처럼 섬김과 희생, 낮아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선교목적을 이루는 방법일 것이다.

 

3) 이미 임했으나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나라 관점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정산을 시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땅을 얼마나 잘 경작하고 관리하였는지 확인하실 것이다. 신약성경에도 보면, 달란트를 맡긴 주인이 돌아와 각 종이 거둔 성과를 확인한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동일한 정산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든,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앞에 임하든 언젠가 정산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섬김과 희생으로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나는 칭찬받는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내가 세운 집이 불에 타면서 공적을 드러낼 것이다. 그 때 지푸라기로 지은 집으로 부끄러움을 당할지, 좋은 재료로 집을 지어 당당하게 구원받을지는 전적으로 나의 오늘 하루 일상에 달려있다. 오늘 내 하루가 그 집의 재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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