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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opery, 출처 Unsplash

 

오늘의 묵상 본문

20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과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할 것이다.

21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 이사야는 '그 날'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예언한다. '남은 사람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날은 신앙과 민족 공동체가 회복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앙 공동체의 회복인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하박국 3장 2절).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신 분이시다. 심판을 하시더라도 완전히 없애지는 않으신다.

22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너의 파멸이 공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되었다.

23 파멸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온 땅 안에서 심판을 강행하실 것이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온에 사는 나의 백성아, 앗시리아가 몽둥이를 들어 너를 때리고, 이집트가 그랬듯이 철퇴를 들어 너에게 내리친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25 너에게는 머지않아 내가 분노를 풀겠으나, 그들에게는 내가 분노를 풀지 않고, 그들을 멸망시키겠다."

26 만군의 주님께서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 사람을 치신 것 같이 채찍을 들어 앗시리아를 치시며, 또한 이집트에서 바다를 치신 것 같이 몽둥이를 들어서 그들을 치실 것이다.

->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한시적이나,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은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것이라고 예언한다.

27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앗시리아가 지워 준 무거운 짐을 너의 어깨에서 벗기시고, 앗시리아의 멍에를 너의 목에서 벗기실 것이다. 네가 살이 쪄서 멍에가 부러질 것이다.

28 앗시리아 왕이 리몬에서부터 올라가서 그가 아얏으로 들어갔다. 미그론을 지나서, 믹마스에다가 그의 군수품을 보관하였다.

29 험한 길을 지나서, 게바에서 하룻밤을 묵겠다고 하니, 라마 사람들은 떨고, 사울의 고향 기브아 사람들은 도망하였다.

30 딸 갈림아, 큰소리로 외쳐라. 라이사야, 귀를 기울여라. 가련한 아나돗아, 대답하여라.

31 맛메나 사람이 도망 친다. 게빔 주민이 그 뒤를 따른다.

32 바로 그 날, 벌써 적들이 놉 마을에 들어왔다. 딸 시온 산에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먹을 휘두른다.

33 그러나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그들을 나뭇가지 치시듯 요란하게 치실 것이니, 큰 나무들이 찍히듯, 우뚝 솟은 나무들이 쓰러지듯, 그들이 그렇게 쓰러질 것이다.

34 빽빽한 삼림의 나무를 도끼로 찍듯이, 그들을 찍으실 것이다. 레바논이 전능하신 분 앞에서 쓰러질 것이다.

-> 그 날은 자유와 복수의 날이기도 하다. 앗시리아의 무거운 짐을 벗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앗시리아에게 복수해 주시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씀 묵상

'그 날'의 의미

'그 날이 오면'이라는 문구는 한국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심훈의 저항시 제목이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 날이 오면

우리 민족에게 '그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8.15가, 6.25가, 5.18, 6.10, 4.16이 그렇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대부분의 날이 '그 날'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날들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자유와 관련되어있는 날이다. 자유를 얻거나, 자유를 뺏기거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일제강점기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아픈 경험이 있다. 또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긴 시간 독재 정권이라는 암흑기를 거치며 자유가 제약된 시기를 지난 기억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그 날'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도 외부 민족에게 잦은 침략을 당하고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당시의 중동 패권 국가들에 의해서 나라를 잃어버리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왕이 눈이 뽑히고 맨발로 그 먼 거리를 맨발로 걸어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인조가 병자호란기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던 것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자유의 가치는 자유가 없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자유를 뺴앗긴 이후에야 내가 빼앗긴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되는 법이다. '있을 때 잘 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누리던 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누군가 피를 흘리고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되기 때문이다. 일제에 국권을 뺏기고 난 이후 반도의 한국인들은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3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군가는 폭탄을 던지고 총살을 당해야 했고, 누군가는 기차역에서 총을 쏴야했으며, 누군가는 이역만리에서 자신의 성을 전체주의의 소모품으로 제공해야했다. 자유를 빼았겼을 때, 알았을까?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을지, 그리고 그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했을지...

그 날의 영적 의미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래적으로 자유가 없는 예속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제약이 당연한 것이고, 자유가 예외적인 특권인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노예의 자녀로 태어난 자는 노예의 삶을 살 것이 확정적인 것이다. 죄인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죄인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저주의 사슬을 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노예해방역사에서는 몇 몇의 사건으로 인해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영적인 예속상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죄를 지은 자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고 법칙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복음 8장 34절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단 한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의 모습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인간이, 내가 감당했어야 하는 죄의 몫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신의 자유를 주셨다. 인간에게 '그 날'을 주신 것이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그 날'을 얻은 것이 아니다. 혁명을 하지도 않았다. 효율적인 사업을 구축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불쌍히여기심(긍휼)'과 '공로' 뿐이다. 내가, 인류가 기여한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주님! 나에게 '그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더욱이 '그 날'이 일상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자유가 없던 나를 자유를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다시 빛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런 나의 삶을 주님을 위해 쓰게 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하는데 사용하게 하소서.

또한 나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사람들이 영적인, 육적인 예속속에 살고 있는데,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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