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ue Creator

영화의 줄거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영화를 보며 느낀 점

피의자와 수사 담당자의 관계는 치밀한 심리적 대결 관계이다. 숨기려는 자와 파헤지려는 자, 피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적대적일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묘한 관계로 진전될 수도 있다. 바다를 건너 온 중국인 미망인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형사의 치명적인 사랑이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든 영화는 정성스레 차린 한 상과 같다.

영화 속에는 굉장히 치밀하게 배치된 상징들이 가득하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그 안에 온갖 종류의 정성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화면의 구도, 음악의 종류와 음향의 타이밍, 상징물들의 위치와 형태, 화면의 질감 등 모든 것이 이유 없이 방치되는 일이 없다. 다 이유가 있고, 계획이 있다. 

 

좋은 식사는 좋은 재료로, 실력있는 쉐프가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재료가 나쁘면 쉐프가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요리하는 사람의 실력이 없거나, 정성이 부족하면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제 의식이 재료라면, 영화의 연출자와 감독은 요리사다. 이 영화는 주제 의식과 그 의식의 전달 과정과 형태가 아주 뛰어난, 기분 좋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요리를 먹으면 기분이 좋다. 나아가서 건강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정성스러운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다. 관객으로서 대접받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상징을 해석하며, 깊이있는 연기를 보며, 정성스레 배치한 플롯에 탑승하며 영화에 대한 진심을 느낀다. 나아가 심리적인 치유까지 느낄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나를 살피고, 내 감정을 발견하기 떄문이기도 하다.

 

서래와 해준의 상징들 : 바다와 산(안정)

파도를 타고 온, 파도가 된, 파도에 잠긴 여자

서래(西來)는 서쪽, 그러니까 중국에서 온 여인이다. 그녀의 모티브는 '바다'다. 취조 과정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공자가 말하길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죠. 난 바다를 좋아해요". 그녀의 옷 색은 바다와 같은 파란색 계열의 옷이 대다수다. 심지어 그녀의 집 벽지 또한 파도이다. 월요일 할머니에게 읽어주는 책의 표지에도 파도가 그려져 있다. 그녀의 첫번째 남편은 파도를 지켜보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고, 두번쨰 남편은 파도와 같이 늘 변하는 주식시장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기꾼이었다. 

 

정육면체 벽지의 해준의 방 / 원전 완전 안전, 안정안

해준의 상징은 '붕괴'이다. 안정적인 직업, 공무원이 그의 직업이다. 그의 아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다. 이름도 '안정안'이다.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하는 여자였다. 이포라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고, 이 둘은 주말 부부이다. 결국 안정적인것 같았던 해준과 정안은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 같은 방식으로 헤어지게 된다. 여자인 줄로 알았던 이주임과 함께하기 위해 여자에게 좋다는 석류와 남자에게 좋다는 자라를 든 채 해준을 떠난다. 

 

해준의 집 벽지도 굉장히 상징적이다. 정육면체의 가지런한 구조물의 형태이고, 매우 안정적인 것을 지향하는 그의 성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집 한편엔 미제 사건들의 사진이 붙어 있어 그의 수면을 방해하지만.

 

서래의 파도와 해준의 산

해준은 서래를 만나 그의 삶이 조금씩 붕괴되는 것을 경험한다. 파도가 들이쳐 그의 안정적인 삶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기본 원리는 중성자가 우라늄의 안정적인 분자구조를 붕괴시키면서 나타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안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원자력 발전의 원리는 '붕괴'다. 해준이 서래의 범죄사실을 발견하고, 증거를 인멸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을 만나고 나는 붕괴되었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도 파도의 한복판인 그녀의 집에서 말이다.

 

서래는 왜 해준에게, 해준은 왜 서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서래는 직접적으로 서래에게 '품위'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면 정말 해준의 말투나 착장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형사의 모습이 아니다. 정장을 입고, 애플 워치를 잘 사용하는 굉장히 모던한 느낌이다. 엘리트의 느낌이 나는 형사다. 반면 해준은 서래에게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그저 그녀를 곁에서 바라보고, 관찰하고, 배려할 뿐이다. 참고인 신분인 그녀에게 경비처리가 되지 않는 '시마스시 초밥세트'를 시켜주고, 먼저 상을 치우고, 칫솔까지 챙겨주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마저 바다와 산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붕괴의 전조를 상징한 것일까?

결국 서래는 그녀의 모티브인 바다로 가 삶을 마감한다. 바다에 잠기는 방식을 활용해서 죽음을 선택한다. 조금 독특한 것은 그녀가 '붕괴'의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서래가 해준에게 선사한 삶의 붕괴를 후회하는 듯이 그녀는 스스로 붕괴되는 방식을 선택하여 죽음에 이른다. 그녀가 죽은 붕괴의 터 위에서 해준은 신발끈을 고쳐묶는다. 그녀와 비밀 데이트를 했던 산사(山寺)의 딱딱한 계단 위에서 신발끈을 고쳐 묶었던 것처럼. 이제 다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일지 아니면, 그의 삶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독의 상징물일지.

 

결국 서래와 해준은 바다와 산을 의미하고, 이는 동양의 도교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음과 양을 상징하는 것일까? 음과 양의 조화를 추구하려 했으나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가 바스러져 가는 과정을 세상의 원리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안개'와 '눈'의 모티프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정훈희 님의 '안개'라는 노래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간주중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가사에 이 영화의 스토리가 다 녹아 있는 것 같다. 친절한 사랑, 내 가족의 유골을 뿌려줄 믿을만한 사람을 찾은 서래. 그리고 그를 떠나 보내 '죽일 만큼' 외로웠던 그녀의 심경, 영원히 그를 곁에 두고 싶어 스스로 미결수가 되기 위해 붕괴된 한 여자의 인생이 가사에 담겨있다. 

 

안개의 특징은 눈에 보이면서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시에 생겼다가 햇빛이 비치면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 속에서 서래는 해준의 삶에 잠시 나타났다가 잡힐듯 잡히지 않은 채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여자였다.

 

해준은 눈이 뻑뻑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마다 안약을 넣는다. 즉 눈이 뻑뻑한 상태는 안개가 눈앞에 끼인 것과 같은 상태이고, 그가 안약을 넣는 행위는 안개와 같은 서래를 그리워하는 행위라고 해설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 즈음에서 붕괴되어 사라지는 서래를 찾아 가며 안약을 넣는 것이 그 상징을 강화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 영화에서는 죽은 서래의 전남편들의 눈도 유독 계속 보여준다. 죽어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눈, 아무런 생기가 없이 동태 눈깔 같은 눈을 보여주면서 생명의 상징인 눈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해준의 눈에 안개가 끼는 것은, 그의 삶이 붕괴되어 죽음에 이를 지경으로 그녀를 그리워한다는 상징은 아닐지 추측해 본다.  

 

글을 마치며

굉장히 생각할 거리와 쓸 거리가 많은 영화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상을 갖도록 명작, 걸작을 만들어 준 박찬욱 감독과 배우들, 제작진들에게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 영화가 기생충에 이어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정도로 '품격' 있어 진 데는 다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 감상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Value Creator.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