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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 ★★★☆
* 한줄평 : 4.3 전후 조선인의 삶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알더라도 깊이 있게 그 원인과 결과, 현재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고 정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20세기는 아주 복잡하고 힘겨운 시기였다.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기, 독립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굉장히 많은 사건이 이 한반도 위에 있었다. 4.3사건은 그 많고 많은 사건들의 중간에 있는, 가장 압축적이고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렇기에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조차도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아픈 사건' 정도로만 기억하고 넘어가게 된다.

 

소설 <<까마귀의 죽음>>은 제주 4.3 사건을 비롯하여, 해방 공간을 전후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주도 양민들을 구금하던 감옥을 지키는 간수의 이야기 부터, 미군 통역관으로서 제주 양민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지식인, '허물 영감'으로서 민간 요법으로 사람들의 고름을 빨아주며 살아가던 한 노인의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4.3 당시의 처참한 생활상과 아픔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유명한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문장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의 출처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배우고, 현재에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미래의 번영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까마귀의 죽음>>은 잊혀진 역사인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이해하고 간접경험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책이다. 첫번째 소설 '간수 박 서방'은 육지에서 노비의 삶을 살다가 제주도로 건너와 간수의 일을 맏게 된 박 서방의 이야기이다. 그는 육지에서는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제주에서는 이른바 '완장'을 찬 권력자로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제주도민들을 감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감시 과정에서 공권력이 제주도민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할 뿐 아니라 결국은 처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 양민 학살을 막다가 같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두번째 소설 '까마귀의 죽음'은 이 책의 제목과 같다. 주인공은 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며 YMCA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래서 미군정 시기 미군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제주도에 주둔한 미군들의 통역을 맡으며, 그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 중간자의 삶을 살게 된다. 문제는 그의 죽마고우인 친구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여 현재 빨치산이 되었다는 데 있다. 그는 친구를 위해 스파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으로 육지 전근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다가 친구의 여동생, 즉 자기가 사랑했던 양순의 마을이 불타고 텅 빈 거리에서 양순의 환영을 보고, 죽은 까마귀를 발견한다. 그리고 주민 처형이 벌어지는 눈내리는 겨울, 양순의 부모와 양순이 형무소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자기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모른척 한 다음 날, 멀리서 총성이 울리고 미군정 사무실 밖 나무엔 까마귀 한마리가 앉아있다. 나무 아래엔 가슴이 풀어헤쳐진 채, 총상을 입어 죽어가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세번째 소설, '관덕정'은 '허물 영감'에 대한 내용이다. 고름영감은 입으로 사람들의 고름을 짜주고 생계를 이어가는 민간 의료인이다. 그는 4.3사건 당시 공무원들로 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 빨치산의 머리를 바구니에 담아 돌아다니면서 그를 아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관련자를 색출하려는 일에 허물 영감이 활용된 것이다. 그는 '관덕정'이라는 건물의 아래에서 노숙을 하는 신세다. 그런 그에게 기생 '서푼이'가 찾아와 죽은 자의 머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는 자기 오빠가 혹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죽게되면 시신이라도 수습하려는 것이었다. 허물 영감은 서푼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수많은 빨치산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관덕정 주변에 빨치산들의 머리가 잘려 말뚝에 박힌 채 다른 빨치산들의 손에 들려 거대한 행군이 벌어진다. 그 머리 중엔 서푼이의 오빠의 머리도 있었다. 허물영감은 서푼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죽음과 까마귀의 행렬 속으로 서푼이가 뛰어들어가자 경찰은 가차없이 그녀를 죽였다. 허물 영감은 늦은 밤 시신을 지키는 간수들에게 찾아가 서푼이의 시신을 찾아 멀리 떠나고 소설은 끝이 난다. 

 

 네번째 소설, '똥과 자유'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일본에 넘어가 광산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고임금을 준다는 약속에 자원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과도 같은 노동강도의 광산이었다. 탈출은 생각할 수 없는 외딴 지역이었다. 자기와 이불을 같이 나누어 덮던 동료가 어느날 탈출하지만, 결국 멀리 가지 못하여 잡혀온다. 일본인 간부들은 그를 묶어놓고, 조선인들의 손에 몽둥이를 들려주었다. 한 명당 두대씩 그들 때리라는 것이었다. 만약 때리지 않으면 뒤에 서 있던 간부의 매질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은 자기 동료였던,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매질로 이미 죽어버린 자기 동료를 그 누구보다 강하게 매질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바로 뒤에 있던 승려 출신의 조선인이 매질을 거부하고, 결국 처형은 마무리된다. 그 이후 주인공은 재래식 화장실의 바닥을 뚫어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러려면 분뇨로 가득한 반지하를 가로질러 도망쳐야 한다. 긴 계획 끝에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발각되어 똥으로 가득찬 공간에서 자유를 찾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비극적인 소설이다.

 

다섯번째 소설, '허몽담'은 시대와 배경을 달리 한다. 주인공은 어느날 기이한 꿈을 꾼다. 소라게가 자기 내장을 파먹는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꿈에서 홍길동이 나와 '내장이 없으면 조선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진다. 주인공은 재일 교포로서, 혈통은 한국인이나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에게는 조선도, 일본도 자기 나라가 아닌 셈이다. 그의 머릿 속에는 강렬한 '독립의 추억'이 있다. 일제가 패망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 전차안에서 일어난 이 일은 그의 평생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공습으로 화재와 연기로 가득찬 도쿄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차 안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 여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주인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주인공은 그녀를 보자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눈물의 원인과 성질을 달랐다. 그녀는 패배로 인한 슬픔의 눈물을, 주인공은 승리로 인한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 경험 이후 주인공은 일평생 이 기괴한 기억을 품고 살면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자기 꿈 속의 '소라게'가 평생 집을 바꾸어 가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치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갈등하며 번민하는 자기 처지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제주 4.3 사건을 전후로 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극적으로 잘 담아둔 소설인 것 같다. 특히 재일 조선인의 삶의 모습이라든지, 강제 징용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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